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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fytree talks -
4년간 캠퍼스를 떠나 있다가 복학을 하고 나니, '학교 풍경도 참 많이 변했구나'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90년대 학번 선배들은 우리를 보며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고는 했는데, 딴에는 나도 나이가 조금 들었다고 생각한 탓인지 이제는 캠퍼스애 몇 남지 않은 친구들이라도 만나게 되면 입에 옛 이야기를 심심찮게 올리게 된다 된다.
젊고 활기찬 후배들이라 예뻐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꾸질꾸질하게 공부만 할 것 같던 친구들로만 가득했던 캠퍼스 내 학생들의 외모도 훨씬 멀끔해졌고 패션 센스도 많이 발전한 듯하다. 강남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신입생 비율이 엄청나게 높아졌다고 하니 놀랄 일은 아니기도 하다.
회사를 다니며 졸업을 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어릴 때에 그렇게 동경해 마지 않았던 '차를 몰고 캠퍼스를 드나드는 형' 이 되어야만 했는데, 이 넓은 학교에 이렇게 차를 세울 곳이 없었던 걸까. 회사를 허겁지겁 빠져 나와 지각은 면하기 위해 서둘러 학교에 도착하면 주차장은 물론이고 순환도로 위에서도 차를 댈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작은 차라서 어디라도 우겨 세울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캠퍼스 자체의 풍경도 많이 예뻐졌다. 경영대에서 음미대, 법대를 돌아 중앙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길목은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산책로가 되었고, 싸구려 샌드위치와 커피를 팔던 곳은 제법 커피전문점 냄새가 나는 가게로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던 학생회관의 치킨버거가 사라지고, 늦은 밤에도 헉헉대며 공대 친구들이 탁구를 치던 신공학관의 라운지는 유명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점포로 바뀌었으며, 우동 한 그릇 먹으며 조모임을 하던 동원관 1층은 세련되고 비싼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다니고 있는 회사의 복리후생 덕에, 농대에 들어선 투썸플레이스를 싼 값에 이용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예전과는 달리 등에는 Seoul National University가 젹혀 있고, 한 쪽 어깨에는 그 유명한 학교의 '샤'자 마크, 반대 쪽에는 학번이 찍힌 야구 잠바를 입고 다니는 후배들이 엄청나게 많이 보였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에 "저 낙성대 다녀요" 서울대생이 거짓말하는 이유는? 이라는 기사를 읽으며 00학번 치고는 이 기자분도 조금은 예전 세대의 생각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지금의 09학번 후배들은 그런 나보다도 더욱 젊고 당찬 생각을 갖고 있나 보다.
학교의 이같은 변화가 좋다고 느낄 수도 있고, 한 편으로는 안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두 학기 정도를 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예전의 학우들보다 지금의 학우들이 - 물론 대부분 후배들이었겠지만 - 더 당차고, 자신감있고,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데에 있어 주저함이 덜하고, 능동적이고, 공부벌레라는 예전 서울대생의 이미지와는 달리 다양한 경험과 관심사를 갖고 있고, 수완이 있는 친구들이라는 느낌이었다. 반면에 이럴 때마다 꼭 따라 오는 '요즘 애들은 철이 없고 무례하다' 라는 표현 역시 머리 속에 함께 떠오르게 된다.
축제 기간이면, 그 어느 교수님도 축제 기간을 배려해주지 않고 (축제 시즌은 언제나 중간고사 시기와 겹쳐 있다. 물론 정해진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고 많은 전공들은 시도 때도 없이 시험을 여러 번씩 보니까) 있었음에도 대학본부 앞, 일명 총장잔디 근처에는 막걸리 술판이 벌어졌던 그 때의 모습도 지금은 찾아 보기 힘들다. 낭만은 줄어든 것 같지만 학교는 더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학생들은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세계 대학 랭크도 참 많이 올랐다. (풋)
하지만 최근 학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법인화 문제와 더불어 이같은 변화들이 왠지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큰 추세의 일부라는 것이 조금은 내 마음을 걱정스럽게 한다. 예전만큼 자신 외의 주변의 사건들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학생들의 수는 분명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도 게시판을 가득 채운 그들의 관심사가 사회운동이라거나 추상적인 것들이라기보다는 취업과 성공이라는 현실적인 꿈들로 많이 변했다는 점, 후배들이 예전 학생들보다 사람을 많은 기준으로 가린 뒤에야 어울리려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점 등은 거대한 경쟁, 자본주의와, 냉정, 차가움과 같은 단어들을 쉽게 연상하게 한다.
앞서 언급했던 기사를 보면서도, 또 학교를 다니면서도 줄곧 내가 생각했던 것은, 서울대 학생들은 자신에 대해 지금보다 더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라는 것이었다. 단 그것이 농담이 아닌 진심으로 경쟁의 승자로 자신을 인정하며 그보다 서열이 낮은 이들과의 상대적인 비교에서 얻는 쾌감이 아닐 때, 그리고 자신이 받게 되는 찬사와 칭찬들만큼 더 노력하며 직간접적으로 이 사회로부터 받게 되는 혜택들 이상을 이 사회에 기여하려 노력할 때에만 말이다.
헌데 많은 기사들에서 언급되었듯이 특목고 학생들이 입학생 중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늘고 있고, 특목고 입시를 떠올려 보면 알겠지만 그 입시란 오히려 수능보다 공교육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내용들이 많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들 중 사교육을 많이 받을 수 있었을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다수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부의 세습, 학력의 세습이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멋지고 예뻐진 후배들의 모습, 몰라 보게 화려해 진 캠퍼스 내의 시설들과 동시에 수 배씩 값이 오른 교내 서비스들, 엄청나게 늘어난 캠퍼스 속 자동차들이라는 개인적으로 꼽아 낸 지표와, 입학자 중 특목고생 비율이라는 간접적 지표는 물론, 강남구 출신 학생 비율이라는 직접적인 지표에서까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코스를 거쳐 서울대에 온 후배들은 과연 자신들에게 훈장처럼 달리는 '서울대생' 이라는 간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 지 궁금하다.
같은 단지 내의 임대아파트 주민을 깔보는 것이 한국 사회고, 강남 아이들이 분당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이 한국 사회다. 잠실 사람들은 이제야 강남과 자신들이 맞먹을 수 있다고 뿌듯해 하는 것이 사실이고, 목동과 송파 중 어디가 더 좋은 동네인가를 비교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부모들과 사회 속에서 자라온 아이들은 당연히 의대와 법대, 서울대와 연고대, 전문직과 대기업을 비교하는 사고를 자연스레 갖게 된다.
더 무서운 것은 생각 보다 이러한 비교 대상들 중 우위에 있는 조건들을 많이 충족시키고 있기에 상대적인 비교로부터의 승리에 익숙한 상태에서 커 온 아이들일수록 자신을 설명하게 될 때에 '승자의 논리'와 '자신'을 연관지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친구들 집은 몇 단지 32평인데 우리 집은 48평이었어. 걔네 아빠는 삼성 다니는데 우리 아빠는 의사야. 걔는 그냥 서초구에 있는 무슨 고등학교 갔는데 난 외고 갔어 등등의 비교에 익숙한 아이는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들과 나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못 누리는 것을 내가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것이 당연히 머리에 남게 되지 않을까?
왜 같은 상황이라도 '그 집은 노점을 하고 우리 아빠는 대기업 다니지만 같은 단지에 살아' 가 아니라, '우리 아빠는 대기업 다니고 우리 집은 일반분양을 받은 건데, 그 집은 노점상을 하는 데다 임대아파트라서 같은 취급을 받아서 짜증나' 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고 또 사회는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이런 옹졸한 사고가 그저 보통의 한 사람에게 박혀 있을 때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훗날 이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이들이 갖게 된다면 그건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권력가들의 많은 행태에서 목격하고 우려하고 있지 않는가. 헌데 생각보다 많은 후배 학우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그들의 툭 툭 내밷는 말을 들으며 흠칫 하게 되고 한다. 그럼에도 복학 후 1년동안 이러한 학생들의 생각을 바꾸어 줄 만한 계기가 될 수 있을 프로그램들에 대한 안내는 거의 보지 못했다. LEET, DEET, MEET, 고시들과 각종 영어시험의 안내와 광고들만이 게시판을 채우고 있을 뿐.
대세는 거스를 수 없고 요구는 무시할 수 없다.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것이 요즈음 학생들의 요구일는지도 모른다. 등록금이 오르더라도 국제무대에서 더 알아 주는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나 내가 더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누리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원래 불쌍하고 못나서 그런 것이니 그 역시 당연하다라는 사고가 그 기저에 자리하게 된다면 그것은 너무 차갑고 슬픈 사회의 분해, 파편화로 이어지게 된다.
더욱이 국립대라는 간판을 달고 - 비록 전신은 해방기 이후의 현대사의 일부기는 했지만 - 국가에 대한 소명으로 그나마 지금껏 이 사회의 리더들을 키워왔던 곳이 이 학교다. 꼭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를 일으킨 놈들도 서울대 출신이 많고, 그럴 때마다 치열하게 대항해 싸웠던 이들 역시 서울대 출신이 많다는 우스운 아이러니처럼, 많은 욕을 먹고 많은 폐해를 만들어냈으면서도 그나마 견제받고 반성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만큼 기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구성원들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터다. 그런 대학 조직은 법인화의 길로 흘러 가고 있고, 그 구성원들 가운데에서는 점차 사회에 고마워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거나 고마워 할 이유가 없는 이들의 수가 늘고 있다.
나는 이 사회를 믿고 싶고, 이 학교를 믿고 싶고, 학우들을 믿고 싶다. 때문에 간혹 철 없어 보이고 옹졸해 보이는 많은 이들의 말들이 빈 말이거나 그저 우리 끼리니까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왜인지 캠퍼스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워졌지만, 좌빨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사회운동에 앞장선다거나, 시끄럽고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려 했던 많은 이들이 자리하게 힘들게 된, 영혼을 잃은 듯한 이 크고 높은 - 실제로도 높은 곳에 있다 - 학교의 모습은 졸업을 앞둔 내 마음을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다.
4년간 캠퍼스를 떠나 있다가 복학을 하고 나니, '학교 풍경도 참 많이 변했구나'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90년대 학번 선배들은 우리를 보며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고는 했는데, 딴에는 나도 나이가 조금 들었다고 생각한 탓인지 이제는 캠퍼스애 몇 남지 않은 친구들이라도 만나게 되면 입에 옛 이야기를 심심찮게 올리게 된다 된다.
젊고 활기찬 후배들이라 예뻐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꾸질꾸질하게 공부만 할 것 같던 친구들로만 가득했던 캠퍼스 내 학생들의 외모도 훨씬 멀끔해졌고 패션 센스도 많이 발전한 듯하다. 강남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신입생 비율이 엄청나게 높아졌다고 하니 놀랄 일은 아니기도 하다.
회사를 다니며 졸업을 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어릴 때에 그렇게 동경해 마지 않았던 '차를 몰고 캠퍼스를 드나드는 형' 이 되어야만 했는데, 이 넓은 학교에 이렇게 차를 세울 곳이 없었던 걸까. 회사를 허겁지겁 빠져 나와 지각은 면하기 위해 서둘러 학교에 도착하면 주차장은 물론이고 순환도로 위에서도 차를 댈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작은 차라서 어디라도 우겨 세울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캠퍼스 자체의 풍경도 많이 예뻐졌다. 경영대에서 음미대, 법대를 돌아 중앙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길목은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산책로가 되었고, 싸구려 샌드위치와 커피를 팔던 곳은 제법 커피전문점 냄새가 나는 가게로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던 학생회관의 치킨버거가 사라지고, 늦은 밤에도 헉헉대며 공대 친구들이 탁구를 치던 신공학관의 라운지는 유명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점포로 바뀌었으며, 우동 한 그릇 먹으며 조모임을 하던 동원관 1층은 세련되고 비싼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다니고 있는 회사의 복리후생 덕에, 농대에 들어선 투썸플레이스를 싼 값에 이용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예전과는 달리 등에는 Seoul National University가 젹혀 있고, 한 쪽 어깨에는 그 유명한 학교의 '샤'자 마크, 반대 쪽에는 학번이 찍힌 야구 잠바를 입고 다니는 후배들이 엄청나게 많이 보였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에 "저 낙성대 다녀요" 서울대생이 거짓말하는 이유는? 이라는 기사를 읽으며 00학번 치고는 이 기자분도 조금은 예전 세대의 생각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지금의 09학번 후배들은 그런 나보다도 더욱 젊고 당찬 생각을 갖고 있나 보다.
학교의 이같은 변화가 좋다고 느낄 수도 있고, 한 편으로는 안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두 학기 정도를 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예전의 학우들보다 지금의 학우들이 - 물론 대부분 후배들이었겠지만 - 더 당차고, 자신감있고,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데에 있어 주저함이 덜하고, 능동적이고, 공부벌레라는 예전 서울대생의 이미지와는 달리 다양한 경험과 관심사를 갖고 있고, 수완이 있는 친구들이라는 느낌이었다. 반면에 이럴 때마다 꼭 따라 오는 '요즘 애들은 철이 없고 무례하다' 라는 표현 역시 머리 속에 함께 떠오르게 된다.
축제 기간이면, 그 어느 교수님도 축제 기간을 배려해주지 않고 (축제 시즌은 언제나 중간고사 시기와 겹쳐 있다. 물론 정해진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고 많은 전공들은 시도 때도 없이 시험을 여러 번씩 보니까) 있었음에도 대학본부 앞, 일명 총장잔디 근처에는 막걸리 술판이 벌어졌던 그 때의 모습도 지금은 찾아 보기 힘들다. 낭만은 줄어든 것 같지만 학교는 더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학생들은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세계 대학 랭크도 참 많이 올랐다. (풋)
하지만 최근 학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법인화 문제와 더불어 이같은 변화들이 왠지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큰 추세의 일부라는 것이 조금은 내 마음을 걱정스럽게 한다. 예전만큼 자신 외의 주변의 사건들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학생들의 수는 분명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도 게시판을 가득 채운 그들의 관심사가 사회운동이라거나 추상적인 것들이라기보다는 취업과 성공이라는 현실적인 꿈들로 많이 변했다는 점, 후배들이 예전 학생들보다 사람을 많은 기준으로 가린 뒤에야 어울리려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점 등은 거대한 경쟁, 자본주의와, 냉정, 차가움과 같은 단어들을 쉽게 연상하게 한다.
앞서 언급했던 기사를 보면서도, 또 학교를 다니면서도 줄곧 내가 생각했던 것은, 서울대 학생들은 자신에 대해 지금보다 더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라는 것이었다. 단 그것이 농담이 아닌 진심으로 경쟁의 승자로 자신을 인정하며 그보다 서열이 낮은 이들과의 상대적인 비교에서 얻는 쾌감이 아닐 때, 그리고 자신이 받게 되는 찬사와 칭찬들만큼 더 노력하며 직간접적으로 이 사회로부터 받게 되는 혜택들 이상을 이 사회에 기여하려 노력할 때에만 말이다.
헌데 많은 기사들에서 언급되었듯이 특목고 학생들이 입학생 중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늘고 있고, 특목고 입시를 떠올려 보면 알겠지만 그 입시란 오히려 수능보다 공교육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내용들이 많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들 중 사교육을 많이 받을 수 있었을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다수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부의 세습, 학력의 세습이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멋지고 예뻐진 후배들의 모습, 몰라 보게 화려해 진 캠퍼스 내의 시설들과 동시에 수 배씩 값이 오른 교내 서비스들, 엄청나게 늘어난 캠퍼스 속 자동차들이라는 개인적으로 꼽아 낸 지표와, 입학자 중 특목고생 비율이라는 간접적 지표는 물론, 강남구 출신 학생 비율이라는 직접적인 지표에서까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코스를 거쳐 서울대에 온 후배들은 과연 자신들에게 훈장처럼 달리는 '서울대생' 이라는 간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 지 궁금하다.
같은 단지 내의 임대아파트 주민을 깔보는 것이 한국 사회고, 강남 아이들이 분당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이 한국 사회다. 잠실 사람들은 이제야 강남과 자신들이 맞먹을 수 있다고 뿌듯해 하는 것이 사실이고, 목동과 송파 중 어디가 더 좋은 동네인가를 비교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부모들과 사회 속에서 자라온 아이들은 당연히 의대와 법대, 서울대와 연고대, 전문직과 대기업을 비교하는 사고를 자연스레 갖게 된다.
더 무서운 것은 생각 보다 이러한 비교 대상들 중 우위에 있는 조건들을 많이 충족시키고 있기에 상대적인 비교로부터의 승리에 익숙한 상태에서 커 온 아이들일수록 자신을 설명하게 될 때에 '승자의 논리'와 '자신'을 연관지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친구들 집은 몇 단지 32평인데 우리 집은 48평이었어. 걔네 아빠는 삼성 다니는데 우리 아빠는 의사야. 걔는 그냥 서초구에 있는 무슨 고등학교 갔는데 난 외고 갔어 등등의 비교에 익숙한 아이는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들과 나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못 누리는 것을 내가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것이 당연히 머리에 남게 되지 않을까?
왜 같은 상황이라도 '그 집은 노점을 하고 우리 아빠는 대기업 다니지만 같은 단지에 살아' 가 아니라, '우리 아빠는 대기업 다니고 우리 집은 일반분양을 받은 건데, 그 집은 노점상을 하는 데다 임대아파트라서 같은 취급을 받아서 짜증나' 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고 또 사회는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이런 옹졸한 사고가 그저 보통의 한 사람에게 박혀 있을 때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훗날 이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이들이 갖게 된다면 그건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권력가들의 많은 행태에서 목격하고 우려하고 있지 않는가. 헌데 생각보다 많은 후배 학우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그들의 툭 툭 내밷는 말을 들으며 흠칫 하게 되고 한다. 그럼에도 복학 후 1년동안 이러한 학생들의 생각을 바꾸어 줄 만한 계기가 될 수 있을 프로그램들에 대한 안내는 거의 보지 못했다. LEET, DEET, MEET, 고시들과 각종 영어시험의 안내와 광고들만이 게시판을 채우고 있을 뿐.
대세는 거스를 수 없고 요구는 무시할 수 없다.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것이 요즈음 학생들의 요구일는지도 모른다. 등록금이 오르더라도 국제무대에서 더 알아 주는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나 내가 더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누리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원래 불쌍하고 못나서 그런 것이니 그 역시 당연하다라는 사고가 그 기저에 자리하게 된다면 그것은 너무 차갑고 슬픈 사회의 분해, 파편화로 이어지게 된다.
더욱이 국립대라는 간판을 달고 - 비록 전신은 해방기 이후의 현대사의 일부기는 했지만 - 국가에 대한 소명으로 그나마 지금껏 이 사회의 리더들을 키워왔던 곳이 이 학교다. 꼭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를 일으킨 놈들도 서울대 출신이 많고, 그럴 때마다 치열하게 대항해 싸웠던 이들 역시 서울대 출신이 많다는 우스운 아이러니처럼, 많은 욕을 먹고 많은 폐해를 만들어냈으면서도 그나마 견제받고 반성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만큼 기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구성원들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터다. 그런 대학 조직은 법인화의 길로 흘러 가고 있고, 그 구성원들 가운데에서는 점차 사회에 고마워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거나 고마워 할 이유가 없는 이들의 수가 늘고 있다.
나는 이 사회를 믿고 싶고, 이 학교를 믿고 싶고, 학우들을 믿고 싶다. 때문에 간혹 철 없어 보이고 옹졸해 보이는 많은 이들의 말들이 빈 말이거나 그저 우리 끼리니까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왜인지 캠퍼스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워졌지만, 좌빨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사회운동에 앞장선다거나, 시끄럽고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려 했던 많은 이들이 자리하게 힘들게 된, 영혼을 잃은 듯한 이 크고 높은 - 실제로도 높은 곳에 있다 - 학교의 모습은 졸업을 앞둔 내 마음을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다.



오늘 친구 결혼식이 있어 저도 4년만에 학교를 갔다 왔는데, 많이 변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