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체성 / 한국의 주체성 - 탁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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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야 문고판 서적이 들고 다니기 쉽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좋아 하지만, 요상하게도 양장본 서적들에 밀려 별반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던 중, 역시나 우연찮게 이 책을 만났었다. 한국 음악이라는 것이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들 하고 전통 문화니 민족이니 하는 단어들을 많이들 쓰는데, 왜 옛 것은 지켜야 하는 것이며 그 소중하다는 민족이란 게 당췌 무엇이냐 - 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을 일삼던 터라 자연스레 이 작지만 큰 책들에 눈길이 갔는가 보다.


- 여담이지만, 전통이라는 것은 지난 시절의 유산이고, 그나마 그 중에서도 요행히 잘 남겨져 온 것을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에 이르러 대중성을 얻지 못하여 고사된다 한들, 그것 역시 문화라는 것의 자연스런 흐름이요, 변화일 뿐이며 동시대의 우리는 '과거에 이런 것이 있었다'는 예를 남겨 앞으로의 문화 생산에 자양분으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그 전통이 후세대에 다시 한 번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리라는 것을 적어도 인위적으로는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 나의 입장이었다.


  두껍지 않은 책인 만큼, 그리고 저자는 철학자인 만큼, 한국이 무엇이냐, 주체성이라는 게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주기보다는 연구의 바람직한 방법론을 주로 논하게 된다. 다소간 저자의 고집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 물론 나로서는 즐거웠다 - , 되도록 간명하고 현실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싶었던 듯하다.


  의외로 이미지 검색을 해 보다 보니 이 책이 한 때 인문학 베스트셀러였던 데다, 스테디셀러로 이름 있는 작품이며, 최근에는 논술 교육의 여파로 많은 학생들까지 읽는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저자가 속 시원히 이야기하고 싶었을 생각하는 법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이해했다면, 탁석산 씨야 말로 테니스 모임에서 맥주를 놓고 입을 열기 시작했던 그 때 주변의 기대들보다 훨씬 더 멋진 일을 해내신 게 아닌가 싶다.



 두 권을 연이어 읽다 보니, 첫 권은 뇌리에 깊게 남으나, 둘째 권은 너무나 쉬이 읽힌 탓인지 그저 어렴풋한 느낌만 남아 버렸다.



  우리는 시원을 따지는 습관이 있다. 시원을 곧 정체성 판단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원은 정체성 판단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다. 현재 우리 한국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한국의 정체성 판단을 위한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것도 재현되어 현재에 존재한다면 현재의 것이다. 지금 존재 하지 않는 것들의 시원을 탐구하여 우리의 것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재현된 과거만이 현재이고 우리의 정체성 판단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비롯되었든 일본에서 비롯되었든 간에 현재 한국에 존재한다면 일단 우리의 것이 될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성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대중의 지지와 호응이 없다면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의 한국인이 즐기고 부르는 판소리가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조용필의 노래가 더욱더 대중적이므로 조용필의 노래에서 한국적인 것을 찾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다시 말해서, <서편제>보다 <쉬리>가 더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정체성 - 탁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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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이런 글을 읽으시면 꼭 화부터 내는 고집쟁이라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부디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만' 이해해주길.